책소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여성 작가이자 연출가 제르트뤼드와 멋지게 컴백하려는 여배우 오르탕스가 빈 무대에서 공연 연습 중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에 대한 믿음을 보이며 칭찬과 감탄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오르탕스가 개인사, 복잡한 남자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리는 통에 연습은 진척이 없다. 다정했던 대화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서서히 맹수처럼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는다.
한편 조명 디자이너 바티스트는 무대에는 등장하지 않고 조명을 밝히거나 어둡게 하는 것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제르트뤼드와 오르탕스는 상대에게 말 못할 속내를 바티스트에게 방백 형식으로 털어놓는다. 그는 마치 신처럼 말없이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들어 준다. 둘의 싸움을 목격하는 유일한 증인이다. 이처럼 <무대 게임>은 배우들의 연기를 더욱 빛나게 해 주는 조명 디자이너를 보이지 않게 무대로 불러낸 것은 이 작품만의 특징이다.
아임은 제르트뤼드와 오르탕스의 입을 통해 배우의 나약함, 작가나 연출가가 갖는 두려움 외에도 표현의 자유, 검열, 기자나 평론가들의 권력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뤄 가며 우리를 무대 뒤로 초대한다. 특히 작가와 연출가, 배우가 각자 가면을 벗을 때 무대 뒤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그 실체를 특유의 유머와 예리함으로 보여 준다. 연극에 대한 생각은 다르지만 서로의 필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해야 하는 두 사람이 어떻게 체면을 구기지 않으면서 갈등을 해결할 것인지, 팽팽하게 맞서는 두 사람 사이에서 힘의 균형이 어떤 식으로 역전되는지가 관전 포인트다.
200자평
극작가 겸 연출가 제르트뤼드와 여배우 오르탕스가 공연 연습 첫날 무대에서 만나 서로에 대한 칭찬과 감탄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내 다정했던 대화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서서히 맹수처럼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는다. 작가 빅토르 아임에게 2003년 몰리에르 최우수극작가상을 안겨 준 풍자 코미디 극이다.
지은이
빅토르 아임은 프랑스 오드센 지방에 있는 아니에르에서 1935년 유대계 그리스인과 터키인 부모 사이에서 출생했다. 극작가, 영화와 텔레비전 시나리오 작가, 배우, 연출가로 활약하고 있다. 작품을 쓰기 시작한 이래로 현재까지 5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대부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유머로 세태를 꼬집는 현실 참여 작가로 알려져 있다. 사르트르, 브레히트, 골도니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노익장을 과시하며 2013년 현재까지 꾸준히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작품마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등장시켜 인간의 비극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럽고 초라한 모습을 그린다. 뿐만 아니라, 사회와 권력의 모순과 폐해, 부조리를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문체로 비틀어 풍자하고 꼬집는다. 모든 작품이 ‘인간에 의한 인간의 굴욕’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으며 대부분 코믹하게 그려지지만 본질은 비극적이다. 이런 이유로 아임은 자신을 ‘인간적인 인간 혐오자’라 부르기도 한다. 1983년부터 1994년까지 교육자로서 여러 연극 학교와 대학에서 공연 예술, 연기를 지도하며 후배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또한 ‘극예술작가·작곡가협회(SACD)’ 이사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극예술인들의 권리 보호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한편 프랑스연극센터 사무국장직을 맡아 연극 진흥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옮긴이
김보경은 프랑스 스탕달그르노블3대학에서 언어학 학사, 석사 학위를 받고, 리옹2대학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프랑스어와 한국어 언어 문제에 대해 비교언어학 관련 연구 논문을 여러 편 썼고, ≪새한불사전≫(공저,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07)의 한불 대역 집필 작업에 참여했으며 ≪페로 동화로 배우는 프랑스어 I, II≫(공저, 도서출판 만남, 2007)를 펴냈다. 역서로는 ≪라팽 라팽≫(공저, 서울여자대학교 출판부, 2002), <나는 감자>(청어람 주니어, 2009), ≪뿡! 방귀 뀌는 나무≫(청어람 주니어, 2010), ≪톡! 쏘는 물고기≫(청어람 주니어, 2010) 등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무대 게임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68~69쪽
제르트뤼드: (바티스트에게) 아무리 드라마틱한 작가라도, 자기 작품이 공연되기 전에 절망에 빠져들 이유가 전혀 없어. 공연 전에 작가가 겪는 일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거든.
결론적으로, 요점을 정리해 보면,
하나, 죽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얘를 죽이고 싶은 욕구!
둘, 혹은 고문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죽을 때까지.
셋, 불을 지르고 싶은 욕구가 있다. 다시 말해서 내 예술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도구들을 재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다.
넷, 예술 활동은 필연적으로 나르시스적인 형태를 낳는다. 따라서 내가 내 예술 도구를 파괴하는 건 나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다섯, 결론적으로, 난 구렁텅이에 빠졌다.
여섯, 결론에 추가해야 할 사항, 어쩌면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오르탕스: (바티스트에게) 얜 지금 생각하는 중일까?
기분이 나쁜가?
“나 기분 나빠” 하고 나한테 말할까?
그 전화 인터뷰 때문이구나!
기자하고 통화할 때 그 풋내기 계집애가 쾌감을 느끼는 것 같았어….
그냥 느낌이….
일이 잘될 때 나오는 웃음소리하고 그 어린 계집애가 희열을 느낄 때 내는 신음 소리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겠어!
아무튼 나의 사랑스러운 게르르르르르트루루루루드가 몹시 흥분하고 있는 건 사실이야. 힘들어지겠는걸….